[단풍잎 놀이터]
작년 11월 10일 넥슨재단과 메이플스토리는 굿네이버스 · 경기도 · 의정부시 · 성남시와 '공공형 놀이터 조성'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노후된 놀이터 중 성남시 '나들이 어린이놀이터'와 의정부시 '하늘빛 어린이공원' 총 두 곳을 선정해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두 곳은 단풍잎 놀이터로 재오픈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메이플스토리는 조성 기금 10억 원을 기부하고 놀이터 설계 및 시공에 필요한 게임 IP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해 지난 20년간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사랑받아온 넥슨의 대표 게임.
오랜 시간 메이플스토리의 모험과 재미를 놀이터에서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메이플스토리는 단풍잎 놀이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단풍잎 놀이터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곳이 되면 좋을까?
어린이들은 어떤 놀이터를 원할까?
15년째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 하며 놀이터 조성에 힘을 쏟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를 쓴 김연금 소장을 만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험과 안전, 재미와 즐거움, 돌봄까지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김연금 소장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단어는 ‘존중’이었다.
김연금
놀이와 놀이터에 진심인 디자이너. <조경사업소 울> 대표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 작가
놀이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사 논문 주제가 ‘커뮤니티 디자인’이었습니다. 동네 놀이터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의 역할도 하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놀이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공 놀이터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10여 년 전 놀이터 조성 관련 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고요.
어떤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일까요?
대부분의 놀이터에 빠지지 않는 그네(Swing), 미끄럼틀(Slide), 시소(Seesaw)를
3S라고 부르며 재미없고 뻔한 놀이터의 주범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좋은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3S 같은 놀이 시설물 만드는 걸 지양하고, 공간을 비워두자는 의견도 많고요.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이니, 놀이 시설물을 빼고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놀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런 놀이터가 지금 현실에 맞을까요?
요즘은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머무는 시간이 아주 짧아요.
학교와 학원 사이, 학원과 학원 사이에 잠깐씩 놀아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놀이를 기획하고 친구들과 모여서 놀겠어요.
이런 현실에서 놀이터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린이들은 놀이터에 오지도 않아요.
시간이 없으면 와서 그네라도 잠깐 타고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는 거예요.
어린이들이 빨리 놀이터에 진입해서 놀이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그네고 미끄럼틀이에요.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만든 공간이 좋은 놀이터 아닐까요?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신나게 오르고 뛰고 구를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터입니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어떤 놀이터인가요?
놀이터 조성 시 어린이들의 의견을 받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린이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이용할 놀이터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과정이
어린이들에게 존중받는 경험을 하게 해주거든요. 놀이터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도 생기고요.
그간 현장에서 만난 많은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신나게 오르고 뛰고 구를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터입니다.
2014년에 중랑구에 놀이터를 만들면서 놀이터 바로 옆 어린이집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보라고 했을 때 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릴게요.
‘높이 오르고 길게 뛰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요.
어린이들은 오르고 뛰고 모험하고 도전하며 성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을 포기하기는 어렵지요.
그렇다면 재미를 조금 포기하고 안전 기준을 철저히 지키면 안전한 놀이터가 될까요?
규격화된 기준이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안전한 놀이터와 모험심을 자극하는 놀이터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모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놀이터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표준화된 놀이터가 다른 의미에서 더 위험하다고 확신합니다. 오르기 그물이나 사다리의 가로대 사이의 거리가 정확히 같을 때 어린이는 발을 어디에 둘지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놀이가 단순화되고 어린이가 자신의 움직임을 걱정할 필요가 없음으로 표준화는 위험합니다.” - 덴마크의 놀이터 조경가 헬레 네벨롱의 2002년 ‘Designs on Play’ 콘퍼런스 기조강연 중 일부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 99p 발췌)
지금 우리나라의 놀이터는 어떤가요?
최근 놀이터의 외형은 정말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유럽이나 미국 놀이터 사진을 공유하면서 ‘외국에 이런 놀이터가 있대!’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 별로 안 해요. 하지만 겉보기에는 멋진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의도가 없는 경우가 여전히 많아요.
외형적인 건 빠르게 쫓아가지만, 사회적으로 놀이나 놀이터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거죠.
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어린이들의 접근성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는 편이고요.
훌륭한 놀이터 디자인은 이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 놀이터는 여전히 찾기가 쉽지 않아요.
어린이들도 예쁜 디자인의 놀이터를 선호하나요?
그럼요. 좋은 디자인의 놀이터는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어요.
언젠가 잘 조성된 놀이터에 갔다가 구석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어요.
왜 여기 있냐 물었더니, “이곳에 있으면 기분이 좋다.”라고 답하더라고요.
우리 어른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잖아요. 사무실 근처에 인테리어가 훌륭한 카페가 있어요.
지나다 보면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여요.
나도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죠.
돈을 내지 않아도 어린이들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 필요해요.
그 안에 있을 때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디자인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건,
어린이들에 대한 존중이고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에요.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말씀이 와 닿아요.
돈을 내지 않아도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입장료가 비싼 키즈카페가 늘어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누구나 갈 수 있는 도시의 공원이나 놀이터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해요.
어린이들은 놀이터가 좋으면 라면도 놀이터에 가서 먹어요.
“왜 여기서 라면을 먹어?” 물어보면 여기서 먹으면 라면이 더 맛있대요.
어린이들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는 숙제도 하고 책도 읽어요. 친구들과 모여 조별 과제도 하고요.
놀이터가 어린이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 등에 따라 놀이 경험의 격차가 커지고 있어요.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공공 놀이터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것은 무엇 일까요?
사교육 열풍이 강한 곳에서는 놀이터에 어린이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사교육에서 자유로운 어린이들이 놀이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에요.
낮에 놀이터에 가면 돌봄을 못 받는 어린이들이 많이 놀고 있어요.
공공 놀이터가 돌봄의 공간으로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놀이터와 돌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하는 일의 특성 상 놀이터에 자주 가요. 그때마다 저희에게 먼저 다가오는 어린이들이 있어요.
한 번은 어린이들이 휴대폰 와이파이를 쓰게 해달라고 저희를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 그 어린이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걱정스러운 마음에
“너희 이렇게 낯선 사람들 따라다니면 안 돼. 엄마한테 이야기해야 해.”라고 말했더니
“엄마 하늘나라 갔어요” “전 엄마 없어요. 우리 아빠는 신경도 안 써요.” 그러는 거예요.
방과 후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정의 돌봄에서도 벗어난 사각지대 어린이들이 하루종일 놀이터에 있어요.
놀이터에서 그런 어린이들을 돌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누군가가 나와서
어린이들과 놀고 간식도 주고 그런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주 놀이터에 오는 어린이가 갑자기 안 보이면 안부를 확인할 수도 있겠죠. 소외된 어린이들은
자기 존중감을 갖기가 어렵거든요. 많은 어른들이 놀이터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너 집에 안 가니? 아직도 여기 있니??” 잔소리를 하고 안 좋은 눈초리로 보죠. 문제아처럼 대해요.
그러지 말고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놀이터에서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 번은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가 저에게 상담을 청한 적이 있어요. 언니가 너무 밉대요.
한참 언니랑 다툰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가 간식을 주니까 하나 더 달라고 하더라고요. 언니 가져다준다고요.
이런 어린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놀이터가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배울 수 없지만 놀이터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놀이터에 놀이 활동가를 배치할 수도 있겠고요.
놀이터가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배울 수 없지만 놀이터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놀이 활동가가 무엇인가요?
외국에는 ‘플레이 워커(Play Worker)’라는 직업이 있어요. 가까운 일본에도 있고요.
우리나라에선 전래 놀이 등 놀이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놀이 활동가라고 하기도 하는데,
제가 말하는 놀이 활동가는 놀이터에서 최소한의 개입을 하며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촉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거기에 돌봄을 더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산마루 놀이터가 그 대표적인 곳이에요.
그곳을 처음 조성하면서 놀이 활동가들을 고용했어요.
그들은 어린이들의 놀이에 개입하거나 놀이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어린이들과 하나가 되어서 놀아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원하는 자원을 주고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요.
어린이들이 농구를 하고 싶어 하면 벽에 농구 골대를 설치하는 식이죠.
토요일엔 어린이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요.
코로나 19 이후로 예산 때문에 놀이 활동가들을 줄였는데,
주민들이 놀이 활동가들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을 정도예요.
지역 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꿔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어린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아도 좀 참자. 사랑스럽게 보자.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린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아도 좀 참자. 사랑스럽게 보자."
어린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은 좀 더 편하게 놀 수 있어요.